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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rite/write

이별 후유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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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사랑하는 동안에 나는 참 귀엽고 웃겼다.
마치 내가 온갖 로맨스 소설의 주인공이라도 된 것마냥 행동했거든.
슬픈 노래에 뜬금없이 울고,

그러다가도 네 사진을 보면서 헤죽헤죽 웃었다.
네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했고,

작은 말이나 행동에도 서운해하거나 기뻐했다.
착각은 일쑤였고 오버도 심했다.
첫사랑이었으니 당연히 그랬겠지.
지금은 이해할 수 있다.
그때의 나는 너를 진심으로 사랑했다기보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푹 빠져 헤어 나오기를 거부했던 것 같다.
마냥 행복했으니까.
정말이지 그런 행복은 처음이었으니까.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네가 좋다면 무조건 오케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네가 하는 말이면 무조건 굿.
뭐든지 네가 하자면 무조건 예스.
호구라고 불려도 배시시 웃음이 새어 나올 만큼

아니, 너라면 기꺼이 호구가 되겠다고 생각했을 만큼,

네가 너무 좋았고 넌 내 빛이었으니까.

완벽한 타인이었던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나를 기쁘게 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기까지 했다.
네 말 한마디면 나는 종일 웃을 수 있었고,

종일 달릴 수도, 종일 울 수도 있었다.
마치 리모컨의 버튼만 누르면 나오는 채널처럼 나는 네 앞에서 항시 대기조였다.
네게 주는 건 하나도 아깝지 않았고,

내가 먹는 것보다 널 배불리 먹이는 게 더 기뻤다.
오히려 더 주지 못해 안절부절이었다.

뿐인가,

나는 너를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믿었을 만큼 사랑에 눈이 멀어있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고 서로 지쳐갔다.
의도치 않아도 내게 끊임없이 상처를 주게 되는 너와

의도하여 널 끊임없이 만나러 가는 나의 간극은 벌어져만 갔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급기야 나는 네게 집착했고 너는 그런 나를 부담스러워했다.
그러다 내가 너에게 족쇄이자 짐이 되었다는 걸 깨달은 순간,

내 세상은 무너져내렸다.

나는 너의 부담이 되기는 죽기보다 싫어서 먼저 이별을 고했다.
너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고 알겠다고만 했다.
나는 그 후 마치 내일 죽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굴었다.

며칠을 먹지도 자지도 않다가 배가 터져라 먹다 지쳐서 잠들고선 사흘 동안 내리 잠만 잤다.
그렇게 고의적으로 스스로를 망가뜨렸다.
그때는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사람인 줄 알았거든.
네가 아니라면 아무하고도 말하고 싶지 않았고,

네가 없는 세상에선 더는 살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사랑인 줄로만 알았으니까.
첫사랑과의 이별에서 그 정도의 유난은 떨어야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널 아무리 잊으려고 노력해 봐도 네가 떠올랐다.
내 머릿속에 늘 네가 돌아다녔다.
쿵쾅 쿵쾅, 거인의 발자국 소리에 놀라 잠 못 드는 아이처럼

나는 늘 내 머리를 헤집는 네 덕에 곤두선 신경으로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한 사람을 잊으려면 그 사람에 대한 마음이 다 날아갈 때까지,

닳아 없어질 때까지 계속 마음을 표현하고 오히려 더 떠올려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게 내 마음에 꽂혔던 것이다.
나는 그날부터 정말 너를 잊고 싶었던 건지,

아니면 마음껏 생각하기 위해 합리화를 했던 건지는 몰라도 열심히 너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의도적으로 널 계속 떠올렸다.
그래서 너는 언제나 나와 함께였다.
밥을 먹을 때도, 책을 볼 때도, 씻을 때도,

잠자리에 들 때도, 친구와 만날 때도 항상 네가 있었다.
같이 웃어주었고 같이 누워주었다.

그때부터였나 나는 비로소 안정되기 시작했다.
결국에는 본래의 생활패턴과 생체리듬을 되찾았다.
물론 가끔은 네가 너무 보고 싶어서 숨죽여 울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나날들이 줄기 시작했다.
서서히 나아지고 있었다.
그렇게 첫사랑과의 이별이란 슬픔이 아득해질 무렵,

너의 소식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너는 역시나 아주 잘, 살고 있었다.
그렇지, 그게 너지.

그렇게 안도하면서도 한편으론 서운했다.
내가 없이도 평안한 널, 나는 그렇게나 갈망했었는데.
너 없이는 살지 않겠다 선언할 만큼 네가 필요하던 나였는데.
널 잊기 위해 오히려 널 내 옆에 세워 둬야 했던 나였는데.
너를 오래록 품었던 나에 비해 네 마음은 얼마나 가벼웠을지.
나는 우리 사이가 대단했다고 포장이라도 하고 싶었던 걸까.
그래야만 내가 덜 아팠을 테니까.
사실 나만 돌아서면 별거 아닌 관계란 걸 알았는데도.
내게 우주였던 너한테 나는 나무 한 그루쯤이었는데도.

 

그제야 알았다.
나는 아직도 널 사랑한다는 것을.
너를 사랑하는 나를 아직 사랑한다는 것을.
천하의 바보가 따로 없겠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다.
너는 그만큼 내게 강렬했고 큰 존재였다.
신기루였고 영웅이었다.
네게 향하는 내 마음을 다시 내게로 돌리기가 얼마나 힘이 들었나.
그럼에도 다시 네가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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