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없는 시간도 흘러가네.
네가 없는 세상도 살아지네.
네가 내 곁에 없는데 난 숨을 쉬네.
당장 죽을 것처럼 아프던 가슴도 이젠 무던하고
늘 내 머릿속을 괴롭히던 네 얼굴도 옅어지네.
통 마르지 않을 것만 같던 눈물도 이젠 가끔, 아주 가끔만 흐르곤 한다.
그래, 이제야 좀 머리가 돌아가네.
네가 떠난 후, 모든 것이 허무해진 나는 죽으려고 했었어.
마치 모든 것이 사라진 세상에서 홀로 남겨진 느낌이었달까.
검은 하늘과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이 맞닿아 나를 괴롭혔다.
너는 늘 내 안에 있는데, 충분히 보이는데도
네가 보고 싶어서 몇 달을 앓았다.
상사병에 걸린 사람의 심정이 이런 걸까 하면서.
그렇게 며칠, 몇 주, 몇 달을 보내고서야
시간의 흐름을 느꼈다.
계절이 바뀌고 바람을 만지고 비를 받아들였다.
살을 에는 겨울쯤에는 지독히도 바쁘게 살았고, 일부러 몸을 혹사시켰다.
네 생각을 잠재우려고 무작정 시작했던 루틴이었다.
하지만 너는 그런 내 일상에서 절대 벗어나지 않았다.
너는 늘 한발 앞서 있고, 매번 날 부르고, 잔인하게 나를 붙잡았다.
내가 네 앞에서 대체 뭘 할 수 있을까.
그저 굴복당하는 것 말고는.
구차한 변명 같지만 나는 널 너무나 사랑했어.
내 목숨과도 널 바꾸고 싶었을 만큼, 널 너무나 원했어.
내 작디작은 마음에 이미 가득한 널 자꾸만 꾸깃꾸깃 넣고 있으니, 그게 문제였지.
그러거나 말거나 난 널 계속 사랑했어.
그래서 욕심이 과해진다거나 무서운 집착이 될 때도 있었지.
그래서 어떤 날은 내 사랑이 이제 그만 바닥나길 바란 적도 있어.
내가 괴물이 되지 않는 길은 그것뿐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지금은 어떠냐고?
사실 잘 모르겠어.
괜찮아진 것 같기도, 전혀 아니기도 한 것 같아.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
나, 네 곁에 있는 동안에 무지 행복했어.
살아온 나날에 그 순간들을 빼면 내 삶이 아니었다고 할 만큼 소중한 추억이야.
삶의 마지막까지 가져가고 싶은 기억이지.
그래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
너도 언젠가는 그런 인연을 만났으면 해.
그 사람 하나만으로도 너의 모든 여백과 구멍을 메울 수 있기를.
그 사람 하나만으로도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감사할 수 있기를.
그 사람 하나만으로도 너의 인생이 설득될 수 있기를.
너의 우주가 결국엔 그 사람 하나로 귀결될 수 있기를.
나한텐, 네가 그랬어.